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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장용 박스테이프 없앤 첫날, 손님들 우왕좌왕

목사골 최 2020. 1. 2. 09:20



포장용 박스테이프 없앤 첫날, 손님들 우왕좌왕

최원우 기자 입력 2020.01.02. 03:07 수정 2020.01.02. 08:19

               
대형마트 3社 올해부터 적용
박스 밑부분 터져 물건 쏟아지고 "테이프 어딨나" 직원과 실랑이도
연간 쓰레기 658t 줄일 수 있어
전문가 "당장은 불편하겠지만 환경보호 위해 장바구니 사용을"

1일 서울 용산의 한 대형 마트 자율포장대에는 '포장용 테이프·끈 제공이 중단됩니다'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포장대엔 종이 박스만 세워져 있었다. 컵라면, 햇반 묶음 등 30만원어치를 사 들고 포장대 앞에 선 신모(48)씨는 당황한 표정이었다. 그는 마트 직원과 "박스 테이프 어딨느냐"며 실랑이를 벌이다, 결국 종이 박스 바닥을 딱지 형태로 접기 시작했다. 박스를 4개나 만들어야 했다. 카트에 실으려다 박스 1개가 바닥이 터져 물건들이 쏟아지기도 했다. 신씨는 "환경보호 취지는 공감하지만, 솔직히 불편하다"고 말했다.

이날부터 롯데마트, 이마트, 홈플러스 등 대형 마트 3사는 지난해 8월 환경부와 맺은 자율협약에 따라 자율포장대에 종이 박스만 남기고 테이프와 끈을 모두 없앴다. 농협 하나로마트 일부 매장도 테이프와 끈을 없앴다. 시행 첫날 장바구니를 준비해 오지 않은 고객들은 상당한 불편을 겪었다. 일부는 "종이 박스 포장을 못 하게 하면 대형 마트를 어떻게 이용하느냐"고 항의하기도 했지만, "대형 장바구니를 쓰니 오히려 더 편하다"는 고객들도 적지 않았다.

◇불편 호소하는 대형 마트 고객들…

박스 밑부분 딱지모양으로 접는 손님들 - 1일 서울 용산구의 한 대형 마트 자율포장대 바닥에 ‘포장용 테이프·끈 제공이 중단됩니다’라는 안내문이 붙어있다. 한 고객이 테이프 없이 종이 박스를 만들기 위해 바닥을 딱지 형태로 접고 있다. /장련성 기자

이날 서울 중구 한 대형 마트에선 고객 10명 중 5명이 다회용 장바구니를 손에 들고 들어섰지만, 여전히 종이 박스를 선호하는 고객이 많았다. 3명 중 1명은 테이프 없이 종이 박스 바닥을 접고 고정되지 않은 상태로 박스를 이용했다. 아예 집에서 테이프를 들고 온 고객들도 있었다. 한 고객은 "어차피 테이프를 들고 와서 쓰면 환경보호에도 별 도움이 안 되는데 불편함만 커진 것 아니냐"고 했다. 일부 마트에선 3000원에 대용량 장바구니, 5000원에 플라스틱 박스를 빌려주는 서비스를 제공했지만, 이용하는 고객은 많지 않았다. 김모(33)씨는 "한번 빌려 사용하더라도 나중에 언제 또 들고 와서 반납하느냐"고 했다.

환경부가 지난해 4월 대형 마트와 쇼핑몰 등에서 일회용 비닐봉지 사용을 전면 금지했을 때는 "불편하지만 환경보호를 위해 감수하겠다"고 했는데 이번에는 불편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제법 컸다. 한 고객은 "비닐봉지는 장바구니로 대체할 수 있지만, 물건이 많을 땐 종이 박스 포장이 여전히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런 반발은 예상됐던 일이다. 지난해 8월 이 같은 방침이 발표된 이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장 보는 사람 입장에선 포장용 박스를 없애는 것은 너무한 일" "환경보호 취지는 이해하지만, 현실을 외면한 탁상 행정"이라는 글이 여러 건 올라왔다.

◇"환경 살리려면 불편 감수해야"

환경부는 플라스틱 폐기물을 줄이고 장바구니 사용을 장려하기 위해선 불가피한 정책이라고 설명한다. 종이 박스는 재활용이 용이하지만, 포장용 테이프와 노끈 등은 일반 쓰레기로 배출되기 때문이다. 환경부에 따르면, 대형 마트 3사에서 연간 사용하는 포장용 테이프와 끈은 658t에 달한다. 늘어놓으면 상암구장(9126㎡) 857개를 채울 수 있는 양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2016년 9월 제주도 중형 마트 6곳에서 자율포장대에서 종이 박스를 치우는 시범 사업을 진행해 성공한 사례가 있다"며 "초반에는 다소 반발이 있었지만, 지금은 장바구니 사용 문화가 자리 잡아 종이 박스를 찾는 사람이 사라졌다"고 했다. 환경부는 일평균 생활폐기물이 2014년 4만9915t에서 2017년 5만3490t으로 늘어났는데, 이 중 30% 정도가 포장재 폐기물이라고 보고 있다. 정부는 단계적으로 1회용 포장재, 비닐봉지 등 사용량을 줄여 나가 2030년까지 플라스틱 폐기물 발생량을 절반 수준까지 낮추겠다는 목표다.

최예용 환경보건학 박사는 "환경 정책은 소비자 입장에서 편리함만 추구하면 성공할 수 없다"며 "처음에는 불편하더라도 환경보호를 위해 필요한 정책이라는 생각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