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2월 3일 강원도교육청 중등교사 국어 교사 임용고사에 합격하였다
작년에 1차합격후 2차시험에 낙방하였으나 노량진같은 학원을 안가고 학교 도서관에서 밤늦게까지 열심히 독학으로 공부한 결실이기에 더 장하다
큰 애 형민을 하늘나라로 보내고 늦동이 아들을 낳아 아버님께 작명을 요청드렸더니 한사코 손을 저으시면서 형민이 이름을 잘못지어 당신 스스로 자책하시면서 빛날형자 돌림으로 작명이 매우 어렵다하시며 나보고 알아서 지으라하시기에 한자를 보다가 우리 집을 빛내는 이름 즉 높을최 빛날형 집우로 한자 작명 획수에 맞는지 안맞는지는 모르지만 뜻풀이로 내가 작명을 하였다
인천에서 춘천으로 네 살때 이사와 집사람과 맞벌이 하면서 이웃 아주머니들 손에 자라며 공부보다는 그저 건강하게만 자랐으면 하는 바램으로 나는 태권도를 고집하였으나 집사람의 욕심에 피아노학원도 조금 다녔으나 피아노보다는 오락실의
오락 게임에 몰두 피아노는 배우다 말았다
지 누나가 여섯 살 차이로 중2때까지 그렇게 공부 잘하던 애를 사설학원에 보내자하는 걸 건강이 최고지 공부 잘하는 애를 무슨 학원이냐고 방치했던게 결국
사춘기때 HOT에 빠져 실력이 떨어지더니 결국 비평준화시절 명문 춘여고를 못가고 2류인 사대부고를 갈 수밖에 없었다
형우는 그저 건강하게만 자랐으면 했는데 중학교때 상위권 실력으로 명문 춘천고에 입학해서 내심 기분이 좋았었다
형우 말대로 고2때 공부를 안했더니 중하로 실력이 떨어져 이를 악물고 나름 공부를 열심히 하니 중상으로 올랐고 수능시험에 국어에서 실수하는바람에 1등급을 못받아 강원대 수시에서 낙방 다시 정시모집에 합격하는 아픔이 있었다
지금도 아쉬운 건 재수를 시키지 못하고 지방대에 보낼 수밖에 없었던 나의 구차한 변명이 항상 나를 짓누른다
회사 퇴직으로 서울쪽은 학비가 비싸서 지방대를 선택 강요했던 애비의 무책임으로 내심 항상 미안했었다 그리고 교사의 길은 지방대에서도 공부만 열심히 하면
임용고사에 합격하리라는 믿음으로
고교시절 영어와 수학을 잘 했지만 문과를 선택했기에 수학교사는 아니고 영어를 잘 했지만 영어는 돈 많은 가정의 해외 연수나 미국에서 살다 온 사람들로 인해 실력에 차이가 난다며 결국 국어교사를 선택했는데 수능에서 국어를 실수하는 바람에 연대 고대쪽은 생각지도 못했던게 두고두고 아쉬웠었다
대학 2학년 때부터 교수님 심부름하며 술이 늘고 일부 장학금 혜택으로 내 주머니를 가볍게 하더니 군 전역후 3학년에 복학 국가장학금으로 졸업때까지 공짜로 다닐 수 있었다
내 바램으로 문과를 선택하여 취업도 못하고 기약도 없이 학교 도서관에서만 씨름하고 노량진은 한사코 배척하더니 운 좋게 합격하여 새출발을 하는 아들에게 해 줄 말이 너무 많지만 28세 청년으로 비뚤어지지않고 성장해준게 그저 고맙기만하다
서울 친구들과 기분이 좋아 저녁을 같이하고 집에 오니 12시가 다 됐지만 잠이 안오고해서 아들에 대한 소회를 적어본다
내일은 몇년째 취업을 못하고 공부만 하고있는 생질에게 학원비라도 보내야겠다
혼자된 여동생이 항상 마음에 걸리고 안스럽기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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