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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춘선은 사라졌지만, 낭만은 남아있네

목사골 최 2015. 8. 14. 11:36

 

경춘선은 사라졌지만, 낭만은 남아있네

[대한민국 구석구석 자전거여행18] 춘천 의암호 호반길 한 바퀴오마이뉴스 | 김종성 | 입력 2015.08.14 10:22

[오마이뉴스 김종성 기자]
 물 위를 거니는 듯한 의암호 호반길.
ⓒ 김종성
2010년 12월 춘천 가는 경춘선 기차가 추억 속으로 사라지고, 요즘엔 'ITX-청춘'이라는 신상 열차가 경춘선을 대신하며 춘천을 향해 달리고 있다. 그와 함께 자동차 드라이브, 호수에서 오리배를 타던 춘천여행이 바뀌고 있다. 노를 한 번 저을 때마다 호반의 풍경 속으로 빠져들 듯 나아가는 카누여행(물레길), 구곡폭포·문배마을·김유정역 등이 이어진 걷기여행(봄내길), 잔잔하고 그윽한 호반길 자전거 여행... 모두 춘천 의암 호수와 그 주변에서 즐길 수 있는 여행이다.

특히 올해 생겨난 28km 의암호 둘레를 한 바퀴 돌아가는 호반길은 자전거 여행자에게 꼭 가보고 싶게 하는 곳이다. 춘천을 품고 있는 의암호를 일주하는 자전거길은 그리 길지도 않고 완만해서 초보자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고, 경치 또한 아름답다. 화살처럼 찌르는 한 낮의 햇살도 피하고 호수의 야경도 감상할 겸 오후 느지막이 춘천을 향해 떠났다. 해가 저물어도 별 걱정이 안 드는 도시 강변 여행의 장점이다. 

의암호는 협곡에 있는 의암봉에서 따온 인공호수로, 1967년 수력 발전을 위한 의암댐의 건설로 인해 북한강과 소양강의 풍부한 수량이 가두어지면서 생성되었다. 호수는 전체적으로 타원형의 모양을 띠며, 춘천 시가지를 비롯한 주변 자연 환경과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어 빼어난 경관을 자랑한다. 의암호 중앙에 유원지로 조성된 섬, 중도와 위도가 떠 있다.

 경춘선 ITX-청춘 기차에 있는 자전거 거치대.
ⓒ 김종성
 이디오피아 원두 커피 자판기가 있는 이디오피아 참전 기념관.
ⓒ 김종성
부드럽고 담백한 알갱이, 풍물시장 미백 옥수수

서울 용산역에서 'ITX-청춘'이라는 춘천행 기차를 탔다. 수도권 전철로도 춘천에 갈 수 있는데 대신 앉아서 가는 건 운에 맡겨야 한다. KTX 다음으로 빠르고 쾌적한 열차지만 비교적 운임이 저렴해서 좋다. 용산~춘천 간 6900원, 청량리~춘천 간 6000원이다. 밖이 잘 보이는 커다란 창문에 천천히 경치 감상하며 가라고 느릿느릿 달렸던 옛 경춘선과 달라도 많이 달랐지만, 세월이 지나도 한 가지 바뀌지 않은 게 있었다.

춘천 가는 기차를 타고 가는 사람들에게서 느껴지는 가벼운 흥분이 열차 안에 둥둥 떠다녔다. 들뜬 기분에 웃음소리, 이야기 소리가 조금 커도 별 신경 쓰지 않는 건 경춘선만의 정경이다. 열차 맨 앞 칸과 뒤 칸에 자전거 여행자를 위한 자전거 거치대가 있어 더욱 좋았다. '애마' 자전거를 가지고 가지 않고 춘천에서 빌려 타도 된다. 춘천역 앞에 자전거를 빌려주는 가게들이 있는 데 하루 만 원에 자전거를 대여해준다.

종점인 춘천역 앞 관광안내소에서 의암호 호반길 지도를 얻고 공지천 공원을 향해 페달을 밟았다. 공지천 공원 앞엔 춘천사람들이 자랑하는 1968년 문을 연 한국 최초의 원두커피 전문점 에티오피아(Ethiopia)의 집이 있다. '벳'이 에티오피아어로 '집'이란 뜻을 지녀 '에티오피아 벳'으로 불린다.

에티오피아는 아라비카 커피(Arabica Coffee)의 원산지로 '커피의 고향'으로 알려져 있으며, 아프리카 최대의 커피 생산국이라고 한다. 옆에 있는 에티오피아 기념관엔 여러 문물 소개도 눈길을 끌지만, 에티오피아 원두커피가 나오는 자판기도 있어 꼭 들어가 보게 되는 곳이다. 에티오피아 자판기 커피를 음미하며 마시며 춘천 지도를 펼쳐보다가, 관광안내소 직원이 알려준 춘천 풍물시장이 보여 찾아갔다.

 춘천 오일장인 풍물시장, 통통한 '미백' 옥수수가 한창이다.
ⓒ 김종성
 공지천을 더욱 운치있게 해주었던 아코디언 아저씨.
ⓒ 김종성
공지천 공원에서 가까운 춘천 풍물시장(춘천시 온의동)은 상설시장인 중앙시장과 함께 매 2일과 7일에 열리는 춘천 시민들의 사랑을 받는 오일장이다. 오후 5시가 넘었지만 장터는 다행히 아직 파하지 않았다. 나처럼 더위를 피해 늦게 찾아온 사람, 혹은 막판 떨이를 노리고 온 알뜰손님들이 파장을 늦추고 있었다.

장터엔 먹거리가 많았지만 옥수수 삶는 냄새가 유독 코를 벌름거리게 했다. 여름 날 더위 속을 달려야 하는 자전거 여행자에게 보약인 옥수수, 큰 솥에서 익는 냄새가 밥 익는 내음처럼 정겹고 달달했다. 홍천에서 왔다는 옥수수 알이 유독 하얗고 가지런하다 했더니 이름이 '미백 옥수수'란다. 충청도의 '대학찰옥수수'처럼 상품화한 이름이다.

딱딱하지 않은 알갱이 덕에 달착하고 보들보들한게 씹는 맛도 좋았다. 이가 약해져 '대학찰옥수수'를 못 먹게 된 어머니가 떠올라 수염이 성성한 옥수수 27개를 사 택배로 부쳤다. 단 돈 만원이니 옥수수 한 개당 400원 꼴이다. 파장이라 가격은 쌌지만 마음이 편하진 않았다. 이 더위에 옥수수를 재배하고 따느라 참나무 줄기처럼 까맣고 깡마른 아주머니 팔뚝이 자꾸만 눈에 아른거려서였다.

풍물시장 바로 뒤에 거대한 공룡처럼 롯데마트가 우뚝 서있었다. 그 너머 춘천버스터미널 옆엔 이마트가 자리하고 있고. 자전거 여행 중 오일장터에 가게 될 적마다 어디든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곳에 똬리를 튼 대형마트들을 보게 된다. 대도시, 소읍을 가리지 않고 들어선 이런 대형마트를 목도하면서, 현 야당이 아무리 별별 대책을 내놓아도 민심을 얻지 못하는지 일말의 단초를 얻게 된다.

1997년 터진 IMF 사태 이후 양산된 비정규직, 대형마트들로 인해 많은 근로자, 중소상인들이 생활고에 신음하고 심지어 자살까지 하는 사태가 벌어지게 된다. 하지만, 여당은 물론 야당 또한 이렇게 어려움에 처한 시민들의 삶을 외면하고 방관했다. 10년이 넘게 쌓인 시민들의 원망과 뼈저린 배반의 경험이 현재의 굳건한 야당 불신을 낳은 것이 아닐까 싶다.

 송암레포츠타운 앞 호반에서 물레길따라 카누를 즐기는 시민들.
ⓒ 김종성
물 위를 지나는 듯, 수상 자전거 길과 유리바닥 전망대

다시 공지천 공원으로 가 본격적으로 의암호 호반길을 달렸다. 공지천교를 지나 오른쪽 호반길로 빠지면 춘천 MBC와 함께 차분하고 우거진 공원 숲길이 이어진다. 호수가 보이는 나무그늘 시원한 숲길 가에 춘천 시민들이 피서 겸 나들이 나와 있다. 어느 할아버지의 아코디언(손풍금) 소리가 호반의 분위기와 잘 어울렸다. 슬슬 눈치를 보며 사진을 찍는 나는 아랑곳 하지 않고 아코디언 연주에 심취해 있는 모습이 그대로 예술가였다.

호반길에서 만난 춘천 시민들, 특히 중년 아저씨들이 자전거 여행자에게 호의적이었다. 아무런 이해타산도 없는 호의, 두 번 다시 만나지 못할지도 모르는 사람에 대한 호의가 여행자에겐 그저 고마울 뿐이다. 의암호로 이어지는 공지천가에서 만난 춘천 토박이 아저씨에게서 공지천의 유래를 처음 듣게 되었다. 옛날엔 '공지'라는 이름의 물고기들이 많이 살아서 공지천이라고 불렀단다.

연어만큼 크고 살도 맛있어서 시도 때도 없이 잡다보니 그만 멸종되고 말았다. 사라진 '공지'가 그리워 하천의 이름에 물고기 이름을 붙인 그 심정을 알 것도 같았다. 대신 요즘엔 콜라캔 굵기의 민물장어들이 낚시에 잡힌다고. 힘이 어찌나 좋은지 낚싯줄에 걸려도 30, 40분간 버티는 건 예사인데다 입으로 금속 찌를 곧게 펴질 않나, 어망을 뚫고 도망가서 촘촘한 양파망을 쓴다니 중년 아저씨들의 보양식이 될 만도 하다.

곧이어 의암호의 섬 중도에 작은 배타고 갈 수 있는 선착장이 나오는데 아쉽게도 문을 닫았다. 유명한 장난감 브랜드인 레고 랜드가 들어설 예정이어서 일반인의 출입이 제한되고 있다고(2017년 3월 완공 예정).

 의암호 호반길의 명소가 된 유리 바닥 전망대, 스카이 워크.
ⓒ 김종성
 의암호수 이름의 유래가 된 옷바위(衣岩) 의암봉.
ⓒ 김종성
카누, 수상스키, 웨이크보드 등 신나는 레포츠를 즐길 수 있는 송암레포츠타운에서 의암댐까지 약 2.5㎞ 구간은 의암호 호반길의 백미다. 자전거를 타고 이 길을 달리다보면 호수의 멋진 풍경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강바람이 시원하게 자전거를 어루만지며 지나갔다. 호숫가를 따라 걷기도 자전거도 편안한 나무데크길이 이어졌다.

길을 만들기 힘든 강변 절벽에 절묘하게 이어진 나무데크길, 물 위를 달리는 기분이다. 일명 '스카이워크 전망대'라 불리는 아찔한 유리바닥 전망대는 호반길의 명소가 됐다. 인간이 가장 공포심을 느낀다는 12m 높이 다리 위의 투명 유리 바닥을 걷자니 다리가 절로 후들거렸다. 조금만 참으면 의암호의 넓고 푸른 물결과 삼악산의 비경을 감상할 수 있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너른 의암호수는 언뜻 강처럼 보였지만 달랐다. 고여 있는 호수 특유의 정적(靜的)인 느낌, 넓게 퍼져서인지 깊고 그윽했다. 아침나절 피어오르는 의암호의 명물 물안개까지 상상해보니 왠지 비밀스럽고 어딘가 신비로웠다. 강변이나 해변과 달리 호숫가는 호변이라 하지 않고 호반(湖, 두둑畔)이라고 부른다. 호반의 도시, 호반의 산책, 호반의 연인, 호반길... '호반'이라는 말이 낭만적인 풍경과 잘 어울려서이지 싶다. 

 의암호수의 서쪽길, 눈이 다 시원하고 장쾌하다.
ⓒ 김종성
시원하고 장쾌한 경치가 펼쳐지는 호수 서쪽길

호반길 옆에 의암호의 이름이 유래한 옷바위(衣岩) 의암봉(315m)이 우뚝 서 있어 절로 눈길이 머물렀다. 의암봉과 호수 건너편 기암절벽으로 빼곡한 삼악산(654m) 사이의 협곡을 막아 의암댐을 만들었고 이런 인공호수가 생겨나게 됐고, 춘천은 호반의 도시가 되었다.

장대한 호수와 달리 보일 듯 말 듯 아담한 의암댐 앞 다리를 건너 의암호의 서쪽 호반길로 접어들었다. 구불구불 리아스식 해안 같은 동쪽과 달리 단순하게 쭉 뻗은 호반길이 눈이 다 시원하다. 탁 트인 조망이 호수가 아니라 바다를 마주한 것 같은 장쾌함을 주었다. 삼악산 매표소 앞에 자전거 여행자를 위한 전망좋은 벤치가 있어 페달질을 멈추었다.

눈앞에 펼쳐진 호수와 주변의 크고 작은 산들을 보면서 묘한 기분이 들었다. 아름다운 자연이 선사하는 순수한 풍경이 주는 감동과는 조금 거리가 있는 감정. 그건 아마도 춘천댐·소양강댐·의암댐 등이 생기면서 수몰된 마을들과, 타지로 쫓겨난 많은 사람들의 추억과 슬픔이 호수 속에 담겨 있기 때문인 듯했다. 어디선가에서 날아온 까마귀 두 마리가 그 시절을 기억하는지 호수위로 빙산의 일각처럼 살짝 올라온 풀등을 지긋이 바라보고 있었다. 

자전거 타고 달리다 심심하면 듣게 되는 라디오를 틀었다. 춘천MBC방송국에서 하는 라디오 방송은 마침 광고 시간이었다. 공익방송시간인지 ㅇㅇ아파트 이장이라며 자기소개를 한 아주머니가 나와 분리수거의 중요성과 방법을 세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동네 주민이 나와 라디오방송을 하는 것도 재밌고, 표준말이라는 서울말로 하느라 조금은 어색한 억양에 키득키득 웃으며 호반길을 달렸다. 

 의암호에서 마주친 귀한 새들.
ⓒ 김종성
 해가 저물자 더욱 그윽한 느낌이 나는 의암호 호반길.
ⓒ 김종성
서쪽 호반길엔 춘천시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애니메이션박물관, 시비(詩碑)가 즐비한 춘천문학공원 등 볼거리 쉴거리가 많다. 저녁 8시가 가까워오자 땅거미가 지면서 호반길 가로등에 불이 하나둘 켜졌다. 그리 밝지 않은 가로등 덕에 호반길이 더욱 좁아 보이고 페달을 빨리 돌리지 못했지만, 이상하게 마음이 푸근해지고 기분이 그윽해지는 어둠이었다. 낮과는 다른 호숫가의 밤공기 때문인지, 별별 벌레들의 합창소리가 한껏 운치 있게 들려오고 야밤 산책 나온 주민들의 발소리가 소곤소곤 정답다.          

소양강 처녀상이 바라다 보이는 신매대교 아래엔 자전거여행 인증센터가 있다. 그 옆에 흔한 편의점이 아니라 동네 주민이 운영하는 수수한 가게가 있어 더욱 좋았다. 순이네 아주머니의 오랜 내공이 느껴지는 비빔국수 한 그릇을 저녁으로 먹었다. 아주머니와 막걸리를 걸친 동네 아저씨들의 만담이 재미있어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하고 앉아 있었다. 춘천은 번듯한 도시지만 이렇게 '춘촌'스런 풍경이 곳곳에 숨어 있어 나는 좋다. 이름처럼 봄에 특히 매혹적이라는 도시 춘천(春川), 의암호 호반길이 있어 여름날에도 셀렘을 안고 춘천으로 떠날 수 있게 되었다.

ㅇ 자전거 여행 주요 코스 ; 춘천역 - 공지천 - 풍물시장 - 춘천MBC - 강변데크길 - 스카이워크 전망대 - 의암봉 - 의암댐(신연교)- 삼악산 입구 - 애니메이션박물관 - 수상자전거길- 신매대교 - 소양강 처녀상 - 춘천역 (약 28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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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ㅇ 지난 8월 12일에 다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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