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동물들

오색 케이블카 반대

목사골 최 2013. 11. 1. 09:44

 

자연은 그대로 두는게 그냥 놔두는게 자연을 지키는 것이다

 

21년째 설악산에서 사는 설악녹색연합 대표 박그림씨 “설악산은 늘 아름다워야 합니다월간마운틴|글 안준영 기자 사진 양계탁 기자|입력2013.10.31 14:07|수정2013.10.31 14:11

 

↑ 박그림씨가 아끼는 산양 그림. 어쩐지 그의 얼굴은 산양을 닮은 듯하다.

설악녹색연합 대표 박그림씨는 20여년 째 설악산에서 환경운동을 해오고 있다.

"서울에서 살다가 1992년에 설악산에 왔어요. 올해로 21년째가 되네요."

박그림씨는 설악산 토박이가 아니다. 고등학생 때 처음 설악산을 왔다가 그 아름다움에 홀려 서울에 살면서도 설악산을 자주 드나들었고, "언젠가는 설악산에서 살아야겠다는 마음을 가졌다"고 한다.

최근에는 오색 케이블카 설치 문제가 불거지면서 그와 관련한 신문 기사에서 박그림이란 이름 석 자를 쉽게 찾아볼 수가 있다. 토박이들에게는 오색 케이블카 설치를 반대하고 나서는 그가 눈엣가시처럼 여겨질 만도 하다. 양양군에서는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해 케이블카 설치 사업을 추진하고 있지만 환경 훼손의 이유로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이 사업은 지난해 6월 처음 부결됐고, 이번 9월 25일에도 부결됐다. 양양군에서는 9월 30일에 3차 도전을 하겠다고 밝혔다. 2차전을 끝내자마자 3차전에 들어가야 하는 박그림씨의 눈빛에 비장함이 감돈다. 토박이도 아니면서 그가 설악산 환경운동에 모든 것을 내던지는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 마루에 앉아 산양의 머리뼈를 들고 있는 박그림씨. 사진을 찍으려 하자 키우는 진돗개가 박그림씨 곁으로 왔다.

설악산이 좋아 설악산에 들어간 남자

"산에 다니다보니 자연스럽게 환경 문제에 대해서 관심이 가기 시작했어요. 서울에서도 녹색연합 회원으로 활동했어요. 그리고 설악산에 와서 보니 설악산 국립공원이 갖고 있는 환경 문제는 어떤 것들이 있고,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가를 고민하게 됐습니다."

그가 설악산에 온 것은 정확히 1992년 10월이다. 그리고 그 이듬해 3월에 설악 녹색연합을 창립했으니 설악산에 오자마자 환경운동을 시작한 것이다. 설악 녹색연합은 서울에 있는 녹색연합의 설악 지부라고 생각하면 된다. 박그림씨는 "현장 활동을 하면서 생활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그게 어렵기 때문에" 사실상 혼자 현장 활동을 하고 있다. 그가 설악산에서 환경운동을 하는 이유를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설악산이 늘 아름다워야 한다는 것을 기본적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그 아름다움이 파괴되고, 자꾸 상처가 나고 아픔이 늘어난다고 하면, 그건 견딜 수 없는 일이잖아요. 설악산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산에 다니는 많은 이들이 '설악산을 사랑한다'고 말한다. 설악에 대한 그의 사랑은 유독 남다른 것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설악산을 사랑한다는 것이 무슨 뜻이냐"는 기자의 물음에 그는 머뭇거리지 않고 대답해주었다.

"자연이죠. 우리도 자연이잖아요. 산에 들어와서 나도 자연 속으로 들어가고 교감을 해요. 설악산의 아름다움을 사랑한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일반적으로는 자연과의 관계를 중요시합니다. '왜 설악산만 그렇게 좋아하냐'는 물음을 받을 때가 많은데, 지리산 좋아하는 사람은 지리산 좋아하고, 설악산 좋아하는 사람은 설악산 좋아할 수 있는 거잖아요. 보는 눈에 따라서 좋아하는 산이 생기는 게 아닐까요."

그가 말하는 '사랑'은 단순히 선호의 대상을 너머서 이해와 연민이 있다. 우리가 누군가를 처음 좋아할 때는 그 사람의 아름다운 겉모습에 반했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그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까지 받아들이는 것처럼.

"설악산을 처음 본 그 감동은 말로 표현하기가 쉽지 않아요. 충격적이라고 할까요. 참 아름다움, 그리고 늘 큰 산, 그것에 대한 생각들, 동경, 그런 것들을 마음속에 그냥 집어넣어주는 듯했습니다."

누구나 그렇듯 그 역시 설악산의 아름다운 모습에 반했다. 좋아하는 이의 그림자라도 보려고 그의 집 앞을 서성여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박그림씨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자꾸만 찾아가고 싶게 만든 산이 그에게는 바로 설악산이었다.

"첫인상이란 게 상당히 중요하죠. 고등학생 때, 처음 설악산과 인연을 맺고, 깊이 빠져들었어요. 설악산을 끊임없이 젊어서부터 드나들다보니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이뤄졌습니다. 그 관계를 통해 아픔이 보이는 거죠. 늘 좋은 것만 있는 게 아니라, 깊이 들여다보고 가까이 다가가 보면 아름다움 뒤에 감춰진 아픔과 상처가 눈에 보이기 시작해요. 그리고 설악산이 가진 환경문제를 보면서 '이런 것들은 바꾸면 좋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갖게 됐습니다."

↑ 산양은 천연기념물 제217호이자 멸종위기에 놓인 야생동물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설악산, 오대산, 대관령, 태백산 일대에서 서식하고 있다. 사진 박그림.

산양들이 설악산에 마음 놓고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야…

박그림씨의 이름 앞에 붙는 수식어가 하나 있다. 바로 산양 지킴이다.

"저는 사실 '지킴이'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아요. 어떻게 우리가 산양이나 설악산을 지킬 수 있겠어요. 산양은 설악산의 깃대종이에요. 이 산양들이 잘 살 수 있도록 해주는 건 설악산 전체에 대한 것으로 이어집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들을 지키는 게 아니라, 그들이 마음 놓고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가 간섭하지 않는 일입니다."

산양은 천연기념물 제217호이자 멸종위기에 놓인 야생동물이다. 서식 환경은 1000~1400m 정도의 험한 산이다. 주로 사람이나 다른 동물이 가지 못하는 암벽 지대에서 산다. 우리나라에서는 설악산, 오대산, 대관령, 태백산 일대에서 서식하고 있다.

박그림씨가 환경운동을 시작하던 때에는 산양이 설악산 어디에 사는지가 주요 문제였다. 산양이 어디에 사는지 알아야 설악산 국립공원을 관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박그림씨는 "설악산에 산양이 살고 있다면, 이들에게 산길을 돌려줘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한다. 그는 산양의 분포조사를 하다가 산양에 대해서 궁금증이 생기기 시작했다.

"산양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무얼 먹는지, 암수는 어떻게 구별해야 하는지."

산양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것은 1967년이지만 1990년대만 해도 산양을 전공한 학자가 국내에 없었다. 그는 산양에 대한 많은 궁금증들을 품고 있다가 2001년에 세계자연보호연맹(IUCN)에 "산양 전문가를 소개해달라"는 내용의 이메일을 보냈다. 그렇게 해서 러시아 극동지방에 있는 알렉산더 미슬렌 박사와 그 부인 인나 볼로시아 박사를 소개받았다. 박그림씨는 그해 10월에 미슬렌 박사 부부를 설악산으로 초청하여 열흘 동안 함께 조사를 하고, 그 조사를 통해서 모든 궁금증을 풀 수 있었다.

"러시아 극동 지방에는 우리나라 산양과 같은 종의 산양이 살고 있어요. 그래서 조사를 마치고 그 해 11월에는 제가 러시아를 방문하여 20일간 그곳의 산양들을 함께 조사했어요. 그 뒤로 지금까지 매년 교류를 해오고 있고요."

박그림씨가 러시아의 미슬렌 박사 부부와 산양을 함께 연구한 것이 계기가 되어, 설악산 국립공원 관리공단은 멸종위기종 보호센터를 설립했다. 국내에서도 산양에 대한 전문 조사가 시작된 것이다. 2010년부터 지금까지의 조사에 따르면, 현재 설악산에는 약 230마리의 산양이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덧붙여, 설악산의 산양 서식 적정 개체수는 500마리 이상이다. 사실상 산양이 많지 않은 것이다. 산양의 번식기는 9월에서 11월 사이로 단풍철 탐방객들이 몰려드는 시기와 맞물린다. 게다가 출산하는 4월도 탐방객이 많은 시기다. 박그림씨는 "산양의 흔적이 많았던 곳에 지금은 흔적이 하나도 없다"며 "사람들이 불법출입하지 말아야 하며, 산양이 사는 곳에 가서 함부로 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의 산양들은 지금 쫓기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60년대 말 70년대 초에만 해도 산에 가다가 먼발치에서 산양을 보곤 했어요. 그러나 지금은 볼 수 없게 됐어요. 생각해보세요. 지금 살고 있는 집에 손님이 하루에 백 명씩 찾아온다고 하면 어떡하겠어요. 견딜 수 없잖아요. 설악산도 마찬가지입니다. 입산예약제를 도입하지 않으면 설악산은 견딜 수 없어요."

박그림씨는 입산예약제에 대해서 "국립공원 관리공단과 논의 중에 있다"며 "등산객들은 아무 때나 들어갈 수 없어서 불편할 수 있겠지만, 그것을 감내해서 우리 후손들에게도 이 아름다움을 물려줘야하는 게 우리의 몫"이라고 말을 이었다.

박그림씨의 이런 생각들은 지역 주민들에게는 환영받지 못하는 게 사실이다. 양양군과 오색 지역의 주민들은 케이블카 설치로 지역경제가 살아날 것을 기대하고 있다. 그런데 케이블카 설치 반대와 입산예약제 주장은 지역민들의 염원에 찬물을 끼얹는 것처럼 들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더 큰 황금알을 얻기 위해 거위의 배를 가를 수는 없는 노릇"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 2011년 1월 2일, 대청봉 정상에서 나체시위를 벌인 박그림씨. 그는 헐벗은 대청봉의 모습을 알리려 이런 시위를 계획했다.

산에 다니는 사람이라면 가져야 할 고민과 책임

"케이블카를 설치하면 관광객의 회전이 더욱 빨라질 뿐입니다. 권금성 케이블카에 사람들이 많이 오는데, 왜 설악동 B・C 지구는 공동화 되고 다 망가졌나요. 흐름이 빠르다는 것은 그곳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겁니다."

빠르면 2017년에 서울~양양 고속도로가 놓인다고 한다. 박그림씨는 "그렇게 되면 한 시간 반만에 서울에서 양양에 와서, 다시 양양에서 오색까지 15분, 오색에서 케이블카 타고 내려오는 데 한 시간"이라며 "이렇게 되면 오색에서 묵는 사람이 있을까요? 밥을 먹고 가는 사람이 있을까요? 그렇지 않을 겁니다. 15분이면 속초, 양양, 강릉으로 빠져나갈 수 있는데 오색에 있을 사람이 얼마나 있겠어요? 길이 잘 뚫린다는 것은 결국 사람들이 편한 쪽으로만 몰린다는 겁니다. 결국 지역경제 활성화에는 도움이 되지 않고 자연만 훼손시키는 꼴입니다"라고 말한다.

한편, 케이블카 설치를 찬성하는 쪽에서는 "케이블카를 설치하면 등산객들을 분산시켜 설악산 탐방로의 훼손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이에 대해서 박그림씨는 "등산이 목적인 사람은 케이블카를 타고 산에 가지 않는다"고 반박하며, "케이블카는 로또가 아니다. 오색은 케이블카 개발보다 산골마을의 특성을 살려서 '느린 관광'과 같은 생태 관광을 개발하는 게 바람직할 것"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 서울 광화문에서 오색 케이블카 설치 반대 1인 시위를 하고 있는 박그림씨. 사진 박그림.

박그림씨도 젊은 시절에는 암벽과 빙벽 등반을 즐기던 이들 중 하나였다. 그는 설악산에 암벽 등반을 즐기는 이들에 대한 생각을 풀어나갔다.

"장수대 쪽에도 많이 등반을 하고 있는데, 사실 그곳은 산양의 서식지입니다. 등반을 하는 사람들이 등반기를 간혹 보면 '산양의 똥이 있었다' 전체 산행 일기 중에 한 줄 두 줄 들어가는 걸로 끝납니다. 그러나 그들 자신들의 등반과정에 의해서 산양들이 어떻게 영향을 받고 있는지도 생각해봐야 합니다. 왜냐면 우리가 그 길을 오르기 전 이미 그곳은 산양이 살던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가지 말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다만 내가 이 루트를 오른다고 했을 때, 그곳에 어떤 생명들이 살고 있으면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고민하고, 그 과정을 통해서 올바른 방법을 찾아가야한다는 말입니다. 예전에는 피톤을 박고 등반했지만, 지금은 캠과 너트 등을 이용한 클린 클라이밍을 하고 있지 않나요? 진작부터 우리는 그 생명들에 대해서 생각해야 했습니다. 이건 산행 문화를 주도적으로 이끌고 나가야 할 사람들의 책임이기도 합니다."

↑ 설악녹색연합의 대표인 박그림씨는 20여 년째 설악산에서 환경운동을 해오고 있다.

짧다고 하면 짧고 길다고 하면 긴, 그와의 인터뷰를 마치며 기자는 "오늘도 산에 가십니까?"라고 물었다. 그러자 그가 대답했다.

"그렇죠. 삶의 무대가 산이니까. 설악산 국립공원을 대상으로 한 환경운동이니까 산으로 늘 가야되고, 그 자리에 늘 있어야 되고. 그런 게 저의 삶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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