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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단체 무공천 파동

목사골 최 2014. 4. 13. 06:54

기초단체 무공천 파동 '민의'는 기만 당했다

경향신문 | 박송이 기자 | 입력 2014.04.12 20:29

·의제 설정 실패, 국민적 관심 왜곡, 소모적 논쟁 끝에 없던 일로 …

·민주주의 '대표성' 간과하고 '효율성'에만 치우친 정치권 모두의 실패

"한마디로 정치권의 4대강 사업이었다."

4대강 사업은 잘못된 정책으로 국가적 낭비를 초래하고, 소모적 논쟁을 이끌어온 정책 실패의 대표적 사례다. 정상호 서원대 사회교육과 교수는 기초공천 폐지 논란을 4대강 사업에 비유했다. 의제 설정에서 실패했고, 그 결과 국민적 관심을 왜곡시켰으며, 결국 소모적인 논쟁만을 초래했다는 것이다. 지난 18대 대선에서 안철수 무소속 후보가 제안했고, 문재인 후보가 받아 안았으며, 박근혜 후보가 약속했던 사안이었다. 정치권 모두의 실패인 셈이다.

정치권에서는 기초공천 폐지 논란의 중심에는 '민의'가 있었다고 주장한다. 2012년 10월 8일 안철수 후보는 대구대 강연에서 기초공천 폐지를 주장했다. 그는 "대통령 권한은 인사에 있듯이 정당의 힘은 공천권에 있다"며 "사명감을 가진 분들도 국민보다 공천권을 가진 정당을 보고 있다. 정치가 민의에 반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 후 1년을 넘게 끌어온 기초공천 폐지 논란은 지난 4월 10일 새정치민주연합이 무공천에서 공천으로 선회하면서 일단락됐다. 이때도 명분은 민의였다. 새정련은 기초단위 무공천 논란과 관련해 여론조사를 통해 국민의 뜻을 한 번 더 묻겠다고 밝혔다.





4월 10일 새정치민주연합 김한길(오른쪽), 안철수 공동대표가 기자회견장에 들어서고 있다. /박민규 기자

하지만 정치권에서 말하는 이 '민의'에 실체가 있었을까. 기초공천 폐지 논란의 시작부터 끝까지 민의는 없었다.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기초공천 폐지는 유권자들에게서 나온 게 아니다. 안철수 후보를 비롯, 새정치를 말하는 사람들이 제시하고 확산한 것이고, 유권자 입장에서는 그게 정치를 바꾸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면 해봐라라는 정도였다"고 말했다. 기초공천 논란의 시작 자체가 유권자들에게서 나온 게 아닌 만큼 마치 유권자들이 요구했기 때문에 기초공천을 폐지해야 한다는 것은 사실과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여론조사에 의존하는 '외주 민주주의'


나아가 기초공천 폐지 논란의 종지부를 찍은 여론조사는 오히려 이 '민의'를 왜곡했다는 지적이다. 여론조사 결과 응답자의 3분의 1 이상이 무공천과 공천 어느 한쪽도 선택하지 않았다. 정한울 동아시아연구원 사무국장은 "무응답이 30% 넘게 나왔다는 것은 많은 유권자들이 이 문제에 대해서 태도가 형성이 안 되었다는 것"이라며 "오히려 이것은 '민의'가 아니라 민주주의와 거리가 먼 '외주 민주주의'이며 '샘플 독재주의'로 비판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정당에서 제도든 규칙이든 리더십이든 정치과정을 통해 풀어야 할 문제를 여론조사라는 외부 기준으로 해결하려 했다는 점에서 '외주 민주주의'이며, 정치적 권리가 없는 1000개의 샘플이 전체 유권자를 대표했다는 점에서 '샘플 독재주의'라는 것이다. 정 국장은 "여론조사는 민의를 과학적으로 추측하기 위한 것이지 이것 자체를 민의로 봐서는 안 된다. 민의에 대해서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기초공천 폐지 논란에서 정치권은 언제나 '민의'를 앞세웠지만, 결국 '민의'에 무지했고 무능했던 셈이다. 서복경 연구위원은 "정치제도를 디자인할 때 현실을 살고 있는 대다수 평범한 유권자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알고, 그 위에서 제도를 디자인해야 한다"며 "공천 문제를 단순히 정당의 기득권이라는 시각에서 접근할 것이 아니라, 유권자들의 선택권을 보장하는 문제로 봤다면 무공천이 아닌 다른 합의점이 나왔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새정련이 무공천에서 공천으로 선회하면서 기초공천 논란은 일단락됐지만, 정치권이 지금부터라도 제대로 된 '민의'를 반영해 지방자치의 건전성을 담보할 제도적 보완점을 모색해야 하는 이유다. 무공천을 반대했던 신경민 새정련 의원은 "공천제가 문제가 있고 손봐야 할 게 많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지방자치 20년이라는 큰 틀에서, 장기적인 관점에서 점검해야 하는데, 너무 논의가 공천이냐 무공천이냐로 흘러가버렸다"면서 "지방선거가 끝나면 지방자치 운영의 틀을 어떻게 개선해나갈 것인지를 본격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공천제도를 민주적으로 바꾸는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우선 중앙당에서 시·도당으로 공천권을 넘기고 지역위원장이 공천에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하는 규제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 공감대를 사고 있다. 새정련의 한 관계자는 "지역에서 기초의원에 도전하려는 정치 신인이 가장 먼저 듣는 말은 '너희 지역구 국회의원과 협의는 됐어?'라는 말"이라며 "중앙당이 시·도당으로 과감하게 공천권을 넘기고 제도적으로 지역위원장인 국회의원이 기초의회 선거에 개입하지 못하도록 엄격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대안으로 공천배심원단도 거론되고 있다. 현재는 공천심사위원회가 공천권을 행사하고 있지만, 공천심사위원회는 객관적인 기준에 따라 형식적인 심사만 하는 기구로 바꾸고, 대신 공천배심원단을 작동시키자는 아이디어다. 공천배심원단은 해당 지역의 시·도당이 당원과 지지자 중 무작위로 추첨해서 구성한다. 배심원단에서 면접과 토론을 거쳐서 후보자들을 추려내는데, 이러한 과정에서 지역위원장의 영향력 행사는 상당 부분 차단될 수 있다는 것이다.

공천제 폐해 최소화하는 보완 작업 필요


지역당 설립도 공천 폐해를 개선할 하나의 해법으로 제시된다. 지역당이 활발해지면 기존 정당이 공천 시스템을 개선하도록 하는 외부 자극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현 정당법은 정당 설립 요건으로 중앙당은 수도에 소재해야 하고, 5개 이상의 특별시나 광역시·도에 1000명 이상의 당원을 가진 시·도당을 둬야 한다고 규정한다. 그러나 이 조항을 없애면 지역당의 설립이 가능해지고, 지역당이 활성화될 경우 지역 정치의 중앙당 예속 현상이 완화될 수 있다. 김수민 녹색당 경북 구미시의원은 "만약 구미에서 새누리당의 한 시의원이 활동을 열심히 했지만, 해당 지역구 국회의원에게 밉보여 공천에서 탈락한다면 자기 지역에 발판을 가지고 있는 지역정당을 통해서 출마를 할 수도 있다. 이런 사례들이 쌓이고 지역당이 활발하게 작동하면 기존의 거대 정당들이 공천에서 좋은 후보를 내야 한다는 압력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기존 공천의 폐해는 일차적으로 각 정당들이 내부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이지만, 지역당이 생기고 이런 흐름들이 활발해지면, 기존 정당들이 더 좋은 정치엘리트를 충원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압박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무공천 논란에서 빠져나온 만큼 정당공천제를 유지하면서 이 제도를 보완하고 문제점을 극복할 방안을 장기적으로 모색해야 한다는 것에 정치권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무엇보다 해법을 찾아나가는 데 있어 되짚어봐야 할 것은 기초공천에는 폐해가 있으니 폐지해야 한다는 식으로 정치를 효율성에만 초점을 맞춰 바라보면 안 된다는 것이다. 지난 1월 새누리당이 사실상 기초의회 폐지안인 기초의회와 광역의회를 통합하자고 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서복경 연구위원은 "서울시 한 구의 주민은 40만명이다. 다른 민주주의 국가들에서 기초자치단위의 숫자는 이보다 훨씬 작은 규모다. 40만명을 대표하는 기초단위도 없애자고 하는 것은 중앙에서 모든 것을 조절하겠다는 것"이라면서 "민주주의를 대표성의 관점이 아니라 효율성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이 지금의 정치인들의 태도인데, 그러한 담론에서부터 탈피해야 한다"고 말했다.

<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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